금융회사의 디지털 대응, 책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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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의 디지털 대응, 책사가 필요하다
  • 김세윤 컨설턴트
  • 승인 2020.10.29 10:30
  • 조회수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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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금융 시장의 주도권은?

2019년에 오픈뱅킹이 시작되었고, 2020년에는 금융의 마이데이터 시대가 열렸다. 나아가서, 전자금융법이 개정되면 지급지시전달업, 종합지급결제업 등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금융산업은 더 이상 금융회사들만의 시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픈 금융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며, 이렇게 될 경우 핀테크, 빅테크, 빅뱅크는 같은 생태계 안에 속하게 된다. 경쟁은 피할 수 없으며, 때로는 협업을 통해 고객 레버리지를 높이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림 1] 금융서비스의 변화 / 조영서, SR1. 마이데이터 이후 한국 금융의 구조적 지각변동, 동아 비즈니스 리뷰 No.305, 2020
[그림 1] 금융서비스의 변화 / 조영서, SR1. 마이데이터 이후 한국 금융의 구조적 지각변동, 동아 비즈니스 리뷰 No.305, 2020

전문가들은 기존의 은행, 카드, 증권, 보험 등 각 업권 내에서 제조와 판매를 동시에 수행하던 금융회사들이 거대 금융 플랫폼 사업자와 금융 제조사로 분리되는 제판 분리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조영서, 2020).

앞선 분석 내용과 매칭시켜 본다면 금융 상품 및 서비스의 판매 역할은 우수한 플랫폼 기능을 보유하고 있는 플랫폼 비즈니스의 빅테크들이 유리할 것이다. 금융을 넘어서 소비자의 일상 생활 전반에 걸쳐 편익을 제공하며, 막강한 브랜드 파워와 함께 전국민에 가까운 소비자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구축된 유통망에 금융 상품을 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금융 상품 및 서비스의 제조 역할은 서비스집중형의 기업들이 유력하다. 이들은 전통적인 뱅킹 서비스의 언번들링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할 수 있다. 다수의 핀테크들도 여기에 해당한다. 

현재의 금융권은 미래 디지털 금융 시대에서 금융 서비스의 백오피스 역할만 담당하는 BaaS(Bank as a Service) 비즈니스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회사가 가진 인프라와 전문성은 더 이상 소비자의 이목을 끌지 못한다. 디지털 금융이 확대될수록 판매와 제조 영역에서 빅테크와 핀테크 기업들의 역할은 확대될 것이고 제도 금융권은 열세에 몰릴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대응하여 경쟁력을 키우는 일도 마냥 쉽지는 않다. 네이버나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 기업 대비 네트워크와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금융회사들이 상품의 유통에 있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지는 미지수이다.

법·제도 환경도 호의적이지 않다. 온라인 대출 비교 서비스의 경우, 대출모집인은 1개 금융회사와만 대출모집 위탁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1사 전속주의’ 규제로 인해 금융회사의 기존 대리점들은 자사의 상품만 추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핀테크 기업들을 비롯, 카카오페이와 네이버 파이낸셜은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혁신금융 서비스를 신청하여 규제를 피해갈 수 있다(조선비즈, 이종현, 2020).

BaaS 역할을 수행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은 금융상품 제조 영역일 것이다. 언번들링을 통해 여러 핀테크 기업들이 특정 분야에 집중하여 전문성을 키우고 있는 것처럼 금융회사들 또한 차별화된 혁신 금융 서비스를 키워 나가야 한다.

금융회사들은 시대의 변화 요구에 전담 부서를 신설하거나 조직 개편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농협은행의 경우 디지털금융부 안에 데이터 사업부를 별도로 설치하였다. 데이터 사업부는 각 부서의 데이터 사업 관련 기획·분석·솔루션 개발·마케팅을 총괄하고, 마이데이터 사업도 맡을 예정이다(한국경제, 김대훈, 송영찬, 2020).

그러나 금융권의 한계는 조직문화에 있다. 금융권 특유의 보수적인 업무 체계와 문화가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은행을 비롯한 대부분의 금융회사는 사원-최고경영자까지 촘촘하게 짜인 직급 체계를 따르고 있다. 상명하복식 문화가 남아있고, 평가방식 또한 전 직원에게 핵심평가지표(KPI)를 부여하고 일괄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이다. 규제산업의 폐해라 볼 정도로 법 해석 또한 보수적이어서 새로운 시도가 일어나기 어렵다(한국경제, 정소람, 2020).

 

금융회사의 대응 1, 애자일 조직의 도입

작년부터 국내의 여러 금융사들이 애자일 조직을 앞다투어 도입해 왔다. 애자일 조직은 기획 인력과 개발 인력이 소규모 팀단위로 구성되어 의사결정이 빠르고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많은 보고체계를 거치느라 변화의 속도가 느렸던 과거와는 달리, 보다 신속한 대응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그러나 금융권의 애자일 조직 도입이 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서 발간한 ‘경량개발 방법론 국내외 현황’의 ‘경량(애자일)방법론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애자일 방법론 도입시 겪는 어려움으로 도입 전후 모두 애자일과 맞지 않는 조직문화를 꼽았다. 근본적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형식적 조직 개편만으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

[그림 2] 경량(애자일)방법론 설문조사 결과 / 정보통신산업진흥원, SW중소기업을 위한 경량개발방법론-경량개발방법론 국내외 현황, 2020
[그림 2] 경량(애자일)방법론 설문조사 결과 / 정보통신산업진흥원, SW중소기업을 위한 경량개발방법론-경량개발방법론 국내외 현황, 2020

금융회사의 대응 2, 사내 벤처 도입

보완책으로 사내벤처를 통하여 혁신 금융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한다. 실례로 신한은행의 경우 마이데이터 시대에 대비하여 데이터 비즈니스에 특화된 사내 벤처를 모집·운영한다. 판매용 데이터 발굴·상품화, 데이터 수요기관 발굴·관리 데이터 제공·가공 등 업무를 맡는다. 선발 인력은 사내벤처팀 소속으로 별도 발령을 내고, 향후 독립 법인 등을 만드는 방안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한국금융, 정선은, 2020).

그러나 사내벤처제도에도 단점이 있다. 첫번째로 사내벤처는 결국 해당 기업의 내부 조직원들이 모이는 형태이다. 하나의 독립적인 법인격을 부여 받기 보다는 기업내 부서 단위에 가깝다. 모기업의 간섭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며 새로운 시각을 투여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두번째로 모기업 입장에서도 투자에 비효율성이 존재한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혁신 서비스를 위해 무기한 투자를 해야하며, 투자금이 인내 자본화 될 수 있다. 또한,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주식을 소유하기만 하더라도 해당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계열사로 분류되어 회계나 투자활동, 운영, 노사관계 등에서 제약이 걸린다(강재상, 2019).

 

금융회사의 대응 3, 오픈이노베이션

이 모든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외부 전문가 그룹을 활용하는 것이다. 외부 조직을 이용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장점은 합리적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무한정 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자원 안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아이템만을 취사 선택할 수 있다. 게다가 투자금을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어 회계처리 및 규제에서 자유로우니 금융회사에게 최선의 대안이 될 것이다.

단, 사업성을 보장하고 앞선 두 가지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외부 전문가 그룹 선택 상의 조건이 있다. 첫번째로 빠른 시장 대응이 가능한 곳이어야 한다. 마이데이터만 하더라도 본인신용정보관리업 본허가 이후 당장 서비스를 운영해야 하므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를 위해 외부 기관에서는 린스타트업 방법론 적용이 필수적이다.

린스타트업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제품으로 개발하여 시장의 피드백을 받는 방법론으로 형식과 절차에 얽매이지 않고 시장의 요구에 부합하는 아이템을 개발할 수 있다. ‘만들기-측정-학습 순환 루프’에서 큰 원은 행동 단계를, 작은 원은 산출물을 뜻한다. 아래의 그림들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시제품으로 개발한 다음 시장의 평가를 받는 과정을 나타낸다.

[그림 3] 린 스타트업 방법론 및 프레임워크 / 양민경, 애자일 방법론②: 린스타트업(lean startup), HR블레틴, 2020
[그림 3] 린 스타트업 방법론 및 프레임워크 / 양민경, 애자일 방법론②: 린스타트업(lean startup), HR블레틴, 2020

이 과정에서 시장의 빠른 피드백을 얻어 내기 위한 MVP 활용이 중요하다. MVP란 Minimum Viable Product의 약어로 최소기능제품을 일컫는다. 디자인 씽킹 등의 아이데이션 과정으로 아이디어가 구체화되면 MVP를 활용한 프로토타이핑으로 시제품을 먼저 출시한다. 시제품을 운영하며 세운 KPI와, 얻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피버팅하며 Product Market Fit을 최적화시키는 것이다.

두번째 조건은 개발된 서비스의 이전 및 M&A가 용이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내 벤처의 경우에는 자사 자본 또는 CVC의 투자금이 투입되어 지분을 보유하게 되지만, 외부 기관을 통한다면 법적으로 지분을 보유하지 않는다. 따라서 추후 서비스 이전 및 M&A 과정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러한 점을 계약사항에 포함시키거나 충분한 신뢰관계가 형성된 업체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금융회사에는 최고의 책사가 필요하다

삼국지에서 승승장구하던 조조의 기세를 꺾은 것은 적벽대전의 패배이다. 적벽에서 조조군과 유비-손권의 연합군이 맞붙은 전투이나 가장 중요한 인물들은 연합군의 책사였던 제갈량과 주유이다. 조조군의 배를 사슬로 묶은 것도, 동남풍을 이용한 화공을 펼친 것도 이들의 전략이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삼국지의 내용은 상당수가 바뀌었을 것이니, 삼국지는 가히 책사들의 전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금융 시대를 맞이하여 시장에서는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소비자의 니즈와 정부의 정책은 금융산업을 통째로 흔들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에 기존 금융회사들은 익숙하지 않다. 각자 절실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삼국지에서 각 나라의 운명은 책사의 역량에 따라 갈렸다. 지금은 디지털 금융의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이다. 금융회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의 책사이다.

 

<참고자료>
ㆍ    SR1. 마이데이터 이후 한국 금융의 구조적 지각변동 (동아 비즈니스 리뷰 No.305, 조영서, 2020)
ㆍ    마이데이터 시대…핀테크에 반격 나선 은행들 (한국경제, 김대훈, 송영찬, 2020)
ㆍ    SW중소기업을 위한 경량개발방법론-경량개발방법론 국내외 현황 (정보통신산업진흥원, 2020)
ㆍ    신한은행, 데이터 사내벤처 키운다…진옥동 ‘데이터 퍼스트’ (한국금융, 정선은, 2020)
ㆍ    사내벤처 101: 사내벤처 프로그램이 잘 안되는 이유 (브런치 매거진-대기업과 스타트업, 강재상, 2019)
ㆍ    애자일 방법론②: 린스타트업(lean startup) (HR블레틴, 양민경, 2020)
ㆍ    '가장 보수적인 집단' 금융권의 혁신 3敵 (한국경제, 정소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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