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패러다임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네그로폰테의 ‘Being Digital’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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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패러다임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네그로폰테의 ‘Being Digital’ 다시 읽기
  • 서민석 선임
  • 승인 2019.11.14 06:23
  • 조회수 3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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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철학자인 토마스 쿤(Thomas S. Kuhn)은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전까지 과학의 발전은 기존 이론의 축적에 의해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쿤은 과학 혁명은 주류 과학의 생각을 뛰어넘는 새로운 발상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불렀다. 패러다임은 "한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이나 방법, 문제의식 등의 체계"를 뜻한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경제는 하나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디지털은 사람들의 의식 구조, 가치관, 세계관, 정치관, 소비관, 시장 질서, 삶의 방식 등 모든 것들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이란 무엇일까? 그 본래의 개념은 무엇이고 어떤 배경 속에서 생겨난 것일까?

MIT교수이자 미디어랩 소장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는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잡지 ‘와이어드(Wired)’에 디지털을 주제로 컬럼을 연재했다. 1995년에는 “Being Digital”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우리나라에는 “디지털이다”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출간되어 있다. 네그로폰테 교수는 ‘디지털 경제는 원자 대신에 비트를 다루는 경제이다.’라고 했다. 디지털 경제를 논할 때 자주 인용되는 문구이다. 디지털 패러다임의 등장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Being Digital”에 실린 칼럼들을 필자의 시각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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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아톰에서 비트로의 변화: 근본적 차원에서 가치의 전환

페이팔의 창립자 피터 틸은 ‘제로 투 원(Zero to One)’에서 비즈니스의 급격한 혁신의 과정을 서로 다른 질서인 0과 1의 그것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단절된 두 세계 사이의 격차를 급진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에서 0과 1은 세계의 질서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이다. 즉, 처음이자 끝인 셈이다. 이것은 마치 역에서 양괘와 음괘로 세상 만물의 질서를 유형화 하려했던 것과 같은 아이디어의 기획이다.


이처럼 디지털 사회에서는 0과 1을 통해 세상의 대부분의 것들을 재현(Representation)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오디오나 비디오를 1과 0으로 바꿈으로써 더 많은 정보를 디지털화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연계의 실제 세계는 경계가 없는 아날로그지만, 오늘 날의 문명 사회에서 사람은 전두엽을 통해 가상화된 정보를 재구성 및 개념화하고, 정보 통신을 활용하여 멀리 떨어져서도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디지털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과거에 국제 무역은 전통적으로 물질, 곧 아톰(원자)을 교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원자 더미가 아닌 정보 더미들인 비트(0과 1로 이뤄진 정보의 최소 단위)가 무역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다.

“디지털 세계가 가져올 영향과 혜택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비트와 아톰의 차이를 생각해 보는 데 있다.”


이에 따라 과거에 신봉되던 전통적 가치들은 빠른 속도로 비트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근본적으로 상품과 서비스 개념이 바뀌고 있다. 물리적 공간의 제약없이 실시간으로 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유형의 원자보다 무형의 비트가 더욱 값진 가치를 갖게 되었다.

[1] 비트는 비트다: 일상 생활과 사고방식의 디지털화

그렇다면 비트란 과연 무엇일까? 비트는 어떻게 디지털 세계와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일까? 비트는 데이터의 최소 요소로서 색도 무게도 없다. 빛의 속도를 지닌다. 그저 늘 1과 0, 위와 아래, 흑과 백, 둘 가운데 한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


하지만 비트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독특한 특징들을 갖는다.

첫째, 비트는 정보 단위로 서로 혼합이 쉽다(혼합 비트 commingled bit). 이를 테면, 오디오 비트, 비디오 비트, 문자 비트 등을 혼합한 새로운 멀티미디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영화 비트라는 하나의 상품 더미가 되는 것이다.

둘째, 정보들 사이에 또 다른 정보를 덧붙여 표시를 할 수 있다. 이를 테면, CD 음악 중에 새로운 트랙의 시작점을 다른 비트로 표시해 둘 수 있다(정보비트 bits-about-bits).

이러한 두 가지 특징으로 비트는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상품들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다.
▶  “디지털화는 비트의 발생원인들을 완전히 새롭게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내용의 창작물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가능성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비트의 가치는 무엇을 기준으로 매겨지는 것일까? 특정 비트는 어떤 이유로 다른 비트보다 더 가치를 갖는 것일까? 미래의 텔레비전을 생각할 때, 사람들은 보통 품질이 좋은 고화질과 고해상도를 지닌 텔레비전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디지털화의 진정한 의미는 기술 자체의 디지털화보다 실제 사람들의 생활과 사고방식을 디지털화하는 것과 더욱 밀접하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 각각에게 서로 다른 의미의 정보들을 어떻게, 시의적절하게 제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오늘 날 비트는 서로 다른 가치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누가 어떻게 그것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따라서 텔레비전의 고선명(High Definition) 이라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날 때, 텔레비전은 완전히 다른 소비자 니즈가 반영된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 비트 방송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철저하게 다원화, 개인화된 방식으로 비트가 유통될 수 있는 것이다.

[2] 인터페이스: 사용자가 아닌 대리자 기반상호작용

디지털 세계에서 비트는 사람과 만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둘 간의 만남이 이뤄지는 곳이 바로 인터페이스이다. 인터페이스는 기계와 사람이 만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한다. 디지털은 사람과 기계의 자연스러운 만남 속에서 스며든다. 이런 이유에서 인터페이스 방식은 더욱 중요해져 갈 것이다.

미래에 사람과 컴퓨터 사이의 인터페이스 방식은 컴퓨터가 당신에 대해 빠짐없이 알아가고, 당신의 필요가 무엇인지 이해하며, 언어 자체와 그 이상의 것을 인식하도록 함으로써 진화해 갈 수 있다. 다시 말해, 마우스 커서를 끌어와 클릭을 하는 사용자의 행동 방식이 아니라 컴퓨터로의 전적인 위임에 기반할 것이다. 이를 ‘대리자 기반 인터페이스(Agent Based Interface)’ 라고 한다.

“대리자 기반 인터페이스라고 일컬어지는 방식이야말로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지배적인 수단으로 출현할 것이다.”

이 변화 과정에서 개인화된 방식이 인터페이스 과정에도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음성인식과 관련되어 있다. 과거의 음성인식은 두 가지 잘못된 집착에 얽매여 있었다. 첫째, 모든 사람의 음성을 빠짐없이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둘째, 연속된 음성 신호를 컴퓨터가 완벽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과거에는 어휘 수, 보편 인식, 연음 처리 문제가 있었는데, 점점 개인화된 기계를 통해 이슈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어휘, '나’를 포함한 주변 인물들의 음성 인식률, '나'의 연음에 대한 이해도를 높임으로써 컴퓨터의 음성 인식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의 알렉사와 구글의 구글홈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인공지능 스피커는 이미 개인화된 정보들을 데이터로서 축적하고 끊임없이 학습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음성 데이터도 같은 방식으로 학습하고 있다(지금도 구글 어시스턴트 – 구글 홈을 작동시키는 어플리케이션 – 의 경우, 특정 사용자의 음성을 인식하여 음성 모델을 생성하고 인식률을 높일 수 있는 별도의 기능이 존재한다).


기존까지의 사람들은 어떻게 컴퓨터를 더 잘 쓸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컴퓨터가 어떻게 사람들을 쉽게 이해하고 다룰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 고민의 축이 이동한 것이다.

“우리의 인터페이스는 서로 다를 것이다. 서로의 인터페이스는 우리들 각각이 좋아하는 정보, 오락습관, 사회행위에 기반하여 나의 인터페이스와 다를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사람과 사람이 아닌, 기계와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 스피커의 사례에서와 같이 컴퓨터는 점점 더 소형화되고 사람마다 최적화된 다양한 형태의 기기들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3] 디지털 삶: 탈정보시대의 초개인화 서비스

지금 우리는 정보화 시대를 넘어 “후기 정보화 시대(Post-information Age)”로 가고 있다. “후기 정보화 시대”에 생산된 상품과 서비스는 집단이 아닌 오로지 한 명의 개인을 향한다. 오늘 날에는 이런 현상을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 라고 부른다. 초개인화는 디지털 시대에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과거의 매스미디어는 정보를 대중 여럿에게 일방적으로 “밀어냈다(Push).” 하지만 미래에는 고객들이 자신에게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끌어올 것이다(Pull).” 과거의 공급자는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자에게 일방향으로 공급했지만, 미래의 소비자는 각자 스스로 필요에 맞게 선택할 것이다. 이미 페이스북과 유튜브에서는 실시간으로 인공지능 기반의 알고리즘에 따라 개인에게 최적화된 마케팅과 서비스 추천이 이뤄진다.

근 이러한 특징들은 주문형(On-Demand) 서비스나 이용한 만큼 지불(pay-per-view) 하는 방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주문형 방식의 가장 큰 특징은 공급자가 아니라 수요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용 데이터나 사용 시간만큼 과금하게 된 것도 모두 측정 (Measurement) 과 관련된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밀접하다.

“앞으로 주문형 정보가 디지털 생활을 지배할 것이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간에 요구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이 한 개인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정보를 통해 각각의 새로운 가상화된 현실을 재현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의 물리적 장벽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공간없는 장소가 나타나며, 모든 정보들이 벌떼처럼 다양한 개인들을 중심에 두고 정렬한다
“모든 것이 주문에 의해 직접 만들어지고, 정보는 극단적으로 개인화된다. 진정한 개인화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여러 디지털 기술들이 빠르게 실용화되고 있다. “스마트 빌딩”, “가정용 로봇”, “디지털 가전제품”, “스마트 자동차” 등. 생각보다 빠르게 디지털 시대가 달려오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초개인화라는 키워드가 자리하고 있다.

위 글들을 통해 “①일상 생활과 사고방식에서의 디지털화”, “②대리자 기반 인터페이스”, “③초개인화 서비스” 이 세 가지 키워드로 네그로폰테의”Being Digital”의 핵심 내용을 재구성하여 보았다.

그렇다면 오늘 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정말 네그로폰테가 예측한대로 일어나고 있을까? 그가 20년 전 그렸던 지도 위를 우리는 실제로 걸어가고 있는가? 다음 연재 글을 통해 알아보자.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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