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패러다임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네그로폰테의 ‘Being Digital’ 다시 읽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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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패러다임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네그로폰테의 ‘Being Digital’ 다시 읽기 [2부]
  • 서민석 선임
  • 승인 2020.01.10 04:36
  • 조회수 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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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이다(Being Digital)’ 의 저자인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책의 에필로그에서 디지털 시대의 주요 특징 네 가지를 밝혔다: 탈중심화(Decentralizing), 세계화(Globalizing), 조화력(Harmonizing), 분권화(Empowering).

사실, 이 네 가지 키워드는 20년 전에 쓴 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오늘날 변화의 실제 모습을 잘 특징짓고 있다.

2015년,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는 TED 강의(“30년간의 미래의 역사”)에서 지난 과거에 자신이 예측했던 많은 기술들이 최근 오늘날의 현실 세계에서 실용화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 중에서도 그가 했던 가장 핵심을 관통하는 말은 바로 “컴퓨팅은 더 이상 컴퓨터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삶 자체이다(Computing is not about computers any more. It is about living).” 이다.

“후기 정보화 사회”의 오늘날 컴퓨팅 시스템은 공기처럼 우리 일상 도처에서 함께 숨쉬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앞서 살펴보았던 ‘디지털이다’ 의 핵심 키워드들(① 일상 생활과 사고방식에서의 디지털화 ② 대리자 기반 인터페이스 ③ 초개인화 서비스)을 중심으로 지금 시대에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일상생활과 사고방식에서의 디지털화: 밀레니얼 소비자의 가치/문화 이해

한국 사회는 일찍이 1990년대 후반부터 IT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1996년), 컬러 액정 핸드폰(2001년), 와이브로(2004년) 등 하드웨어 개발과 도입 기준으로 세계 최초 타이틀을 많이 확보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5G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면서 전 세계에 한국의 기술력을 알릴 수 있었다. 나아가 한국 기업과 가정의 초고속 인터넷 이용률은 99%에 달한다.


하지만 올 해 2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서 내놓은 보고서 ‘디지털 혁신의 국제비교와 시나리오별 무역 영향 분석’에 따르면 무선 주파수 인식(RFID) 기술을 제외하면 기업의 정보통신기술 (ICT) 활용 수준은 높지 않았다. 지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통계 특허 분석결과, 한국의 디지털 혁신 수준은 미국과 일본에 비하면 여전히 낮았다. 분야별로 인공지능(AI)은 미국이 65.1% (1위), 일본이 8.3%(2위), 한국은 2.9%였고, 지능형 로봇은 미국이 40.5%(1위), 일본이 27.3%(2위), 한국이 10.7%였다. 3D 프린팅은 일본이 40.5%(1위), 미국이 30.6%(2위), 한국이 5.2%였고, 사물인터넷은 미국이 85.9%로 압도적인 1위, 한국은 0.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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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전세계 기업들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현황(출처: 델 테크놀로지)

기업 내 디지털 혁신도 사정은 비슷했다. 2018년 10월, 델 테크놀로지와 인텔은 협력하여 전 세계 42개국에서 4,600여 명의 기업 내 C-레벨 리더들을 대상으로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 인덱스를 조사했다. 한국에서는 100개 기업이 참여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디지털 트렌스포메이션을 시작하지 않은 기업은 22%로 집계됐다. 반면, 글로벌 기업 가운데에서는 9%로 집계됐다. 세계 평균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인 것이다.

하지만 네그로폰테는 ‘디지털이다’에서 디지털화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기술 그 자체라기 보다 비트를 어떻게 이 시대의 문화와 사고방식과 연결할 것인가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런 배경 속에서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더 나은 사용자 경험으로 만들고, 떠오르는 소비 집단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할 지” 고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새로운 문화와 사고방식을 가장 빠르게 요구하고 받아들이는 사회 요소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소비자의 변화이다. 그 중에서도 인구통계학적인 세대 교체이다. 따라서 디지털 혁신의 효과적인 적용을 위해서는 밀레니얼 세대(Z 세대 포함, 1980년 ~ 2000년생)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이해해야 한다.

한국을 포함한 밀레니얼 세대들은 전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특징을 갖는다. 첫째,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하여 의사소통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익숙하다. 따라서 무엇이든 간결한 방식을 선호하다. 이들은 모바일과 태블릿에 익숙해져 있고, 유튜브와 페이스북, 틱톡과 같은 SNS를 통해 가상의 네트워크 망에서 디지털 세계를 재현할 준비가 언제든 되어 있다. 이들에게 소비란 스마트폰위로 손가락을 날리는 것만큼 간편한 것이다.


둘째, 개인주의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있다. 이들은 어느 누구든 자신과 동등한 인격으로 여긴다. 모두는 같은 눈높이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고, 솔직하다. 따라서 소비자로서도 자기 개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며, 개인화된 방식을 추구한다. 이것은 다양한 종류의 니치 마켓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셋째, 윤리적으로 민감하다. 2018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Z 세대의 약 65%는 제품의 생산지와 생산 방법과 같은 출처를 찾고, 약 80%는 부도덕한 사건과 연루된 기업의 제품은 구매하지 않겠다는 조사를 내놓은 바 있다. 최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유니버셜 디자인, 소수자를 포용하는 인클루시브 마케팅(Inclusive Marketing)의 확대는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디지털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이런 밀레니얼의 특성을 조직 내부의 문화로서 조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해도를 높여 그들이 기대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이러한 경영 방식이 소비자의 모습을 바꾸고, 그 모습이 다시 경영 방식에 빠르게 영향을 줄 것이다.

[2] 대리자 기반 인터페이스: 인공지능 스피커와 머신러닝 기술의 확대

2017년 버거킹은 구글의 인공지능 비서인 구글 어시스턴트를 광고에 활용하여 커다란 홍보효과를 봤다. 이 광고에서는 버거킹 직원이 등장해 “OK Google(오케이 구글)”을 외치고 와퍼 버거가 무엇인지 설명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자 실제로 이 광고가 송출되던 당시 TV와 핸드폰 주변의 모든 구글 인공지능 스피커들은 이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전 세계의 구글 스피커들이 미친듯이 와퍼에 대해 떠들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와이어드지는 이를 “미래의 광고 방식의 훌륭한 사례”라고 극찬하였고, 뉴욕 타임즈에서는 “버거킹이 광고를 위해 구글을 해킹했다”고 보도하였다. 이후에도 수 많은 언론들은 연일 인공지능 스피커와 음성 인터페이스에 대한 뉴스를 내보냈다. 버거킹 사건은 인공지능 스피커가 우리 삶 속에서 얼마나 가깝게 다가왔는지를 알려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사실, 음성 인터페이스가 처음부터 쉽게 인공지능 스피커에 탑재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에 네그로폰테는 ‘디지털이다’에서 음성 인터페이스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이슈가 있다고 지적했다: 1) “앞으로 어떻게 기계가 사람의 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2) “어떻게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빠짐없이 알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이것이 그가 음성 인터페이스와 관련하여 고민했던 두 가지 부분이다.

오늘날, 이를 해결하고 있는 키워드는 “학습”이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특정 사용자와의 교류 시간을 늘림으로써 상대방의 음성 이해도를 높이고, 일상 속에서 그 사람에 관한 데이터를 꾸준히 축적하여 스스로 배운다. 결정적으로 이것이 가능해진 것은 “머신러닝” 기술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람이 성대를 떨어 음성을 입 밖으로 내뱉으면(아날로그) 스피커는 음성 파동을 접수하고 0과 1로 구성된 음소로(디지털) 치환한다. 그 과정에서 수 많은 학습 데이터를 통해 음성과 음소를 기계학습 시켜 가설적인 함수를 만들 수 있다. 만약, 연음 처리와 발음 등의 문제로 음성을 인식하지 못할 경우에는 듣기용 대상 단어를 한정하거나 맥락을 학습시켜 정확도를 높일 수도 있다. 머신러닝은 사람이 발견하지 못하던 관계를 새롭게 찾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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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2019 글로벌 첨단기술·미디어·통신산업 전망 보고서(출처: 딜로이트)

최근 이러한 인공지능 스피커들은 시장을 통해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 딜로이트에서 발표한 “2019 글로벌 첨단기술·미디어·통신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 규모는 2018년보다 약 60% 증가한 70억 달러(7조 9천억

원)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현재 인공지능 기능을 탑재한 스피커는 2019년 평균 4만 8천원으로 전 세계에 1억 6,400만개가 팔렸다. 가트너는 2020년 세계 모든 가정 중 3.3%가 인공지능 스피커를 보유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인공지능은 기술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기술은 기계와 사람과 관계를 바꿔놓고 있다. 앞으로 나타날 새로운 디지털 기술들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서로와 서로를 이어나가고, 완전히 다른 삶의 모습을 펼쳐낼 것이다.

[3] 디지털 삶: 알고리즘을 통해 고도화되는 초개인화 서비스들

과거에는 매스미디어가 정보를 대중 여럿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냈다면”, 미래에는 고객들이 자신에게 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끌어올 것”이라고 네그로폰테는 예측했다. 그는 그의 책에서 대표적인 개인화 서비스로 주문형(On-Demand) 서비스와 이용한 만큼 지불하는 서비스(Pay-per-view, PPV)를 꼽았다. 이 두 가지 종류의 서비스는 널리 대중화되었다.


주문형 서비스의 사전적 의미는 공급이 아닌 수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서비스를 뜻한다. 특히, 소비자가 원하는 곳으로 상품이나 서비스가 찾아오는 특징을 갖는다. 음식 배달, 물품 배달, 식당예약, 홈서비스, 여행/숙박, 교통, 차량주차 서비스 등이 있다. 대표적으로 카카오가 제공하는 대리운전기사 서비스인 카카오 드라이버와 숙박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엔비(Airb&b)가 있다.

또한 이용한 만큼 지불하는 서비스(PPV)는 시청 프로그램 편당 요금이 부과되는 결제 방식으로 미국에 널리 정착되어 있다. 주로 가수들의 공연, 영화, 스포츠 등을 서비스로 한다. 한편, 과거에 국내에서는 유료 방송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많은 서비스들이 실패하였으나 최근 모바일용 영화나 TV 프로그램 유료 결제 수요가 생겨나면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개인화 서비스들은 기술적으로, 비즈니스적으로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것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더 나아가 단순한 개인화(Personalization)를 넘어 초개인화(Hyper-Personalization)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것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빠르게 가속화되고 있다.

‘아마존의 미래전략 2022’에서는 초개인화와 관련된 아마존의 전략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아마존이 축적하는 빅데이터는 행동패턴, 심리패턴 속성까지 모든 것을 포함한다. 결과적으로 아마존은 일반적인 세그멘테이션보다 훨씬 세밀한 1인 세그멘테이션과 0.1인 세그멘테이션을 가능하게 해 매출 향상으로 연결하고 있다.” 디지털 세계에서 고객은 단일한 소비자 한 명이 아니라 선호와 상황에 따라 다른 취향과 소비 패턴을 보이며,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사람은 일인일색이 아니라 일인백색인 것이다.


이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질 수 있는 이유는 데이터와 인공지능 알고리즘 때문이다. 초개인화 서비스를 위해 중요한 질문은 “고객이 지금 여기에서(now here) 원하는 혜택은 무엇인가?”이다. 기업은 알고리즘을 통해 “때”와 “상황” 에 맞는 세분화된 마케팅을 할 수 있게 된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여 적절하게 서비스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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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매스마케팅 및 초개인화 푸시 알림 메시지 비교(출처: 스켄터랩스)

예를 들어, 모바일 시그널(Mobile Signal) 수집을 위해 고객의 위치정보, 시간 정보와 외부 API를 연동한 날씨, 미세먼지, 유튜브, SNS 사용 데이터를 확보한다. 이후 관련 데이터를 암호화하고 행동 데이터와 개인 프로필 및 취향 데이터로 분류한다. 맥락 인식과 사용자 모델링을 통해 타깃 페르소나를 구체화한다. 이 과정에서 특정 고객이 자주 하는 행동, 자주 가는 장소, 자주 먹는 음식 등을 활동 패턴으로 학습한다. 심층 추론의 정확도가 높아지면 고객이 원하는 적절한 순간에 고객이 원하는 메시지와 푸시를 날릴 수 있게 된다.

만약, A라는 소비자가 유튜브로 신발과 관련된 영상을 보거나 신발을 파는 편집샵에 간다면, 신발을 판매하는 어플이 자동으로 상황에 맞는 워딩과 적절한 신발을 추천해주고 A에게만 차별화하여 가격을 대폭 할인해주는 식인 것이다. 이러한 소비 체험을 한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까? 지금까지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놀랍고도 내밀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 ‘디지털이다’의 핵심 키워드들(① 일상 생활과 사고방식에서의 디지털화 ② 대리자 기반 인터페이스 ③ 초개인화 서비스)을 중심으로 오늘날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현황을 살펴보았다.

가트너 리서치 부사장 브라이언 버크는 '사람이 기술을 이해해야 한 모델에서 기술이 사람을 이해하는 모델로 변하고 있다.' 라면서 '목적과 의도를 파악하는 건 인간의 몫에서 기계의 몫이 되었다."라고 말했다. 브라이언 버크의 말대로 21세기에 우리는 사람과 기계간의 관계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기를 맞았다.

이러한 디지털 시대를 미리 내다본 네그로폰테의 통찰력에 깊이 공감하며 앞으로 등장한 디지털 기술들이 열 미래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 이 글은 ‘디지털 패러다임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 네그로폰테의 ‘Being Digital’ 다시 읽기’의 후속글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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