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문외한들은 어떻게 패션산업의 파괴적 혁신을 일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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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문외한들은 어떻게 패션산업의 파괴적 혁신을 일궜나?
  • 박서기 소장
  • 승인 2019.04.05 06:09
  • 조회수 29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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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업계의 문외한들이 특정 산업의 파괴적 혁신을 일구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말도 안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러 분야에서 이런 현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업계 문외한들이 이처럼 해당 업계의 파괴적 혁신을 이끌 수 있는 것은, 고객 니즈 중심의 신규 사업 창출 방식인 아웃사이드인 전략과 데이터 기반의 고객 맞춤형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여러 산업에서 관측되고 있는데, 이중 특히 눈에 띄는 산업이 바로 패션산업이다.

패션 산업의 파괴적 혁신을 이끄는 대표적인 스타트업으로는 렌트 더 런웨이(Rent the Runway, RTR), 스티치 픽스(Stitch Fix), 추지(Choosy) 세 곳을 들 수 있다.

이 세 회사는 전통 패션기업들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패션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많은 이목을 끌고 있다. 게다가 세 회사의 창업자 모두 창업 전까지만 해도 패션 산업 종사자나 전문가가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다. 가성비 높은 예쁜 옷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구매 욕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패션 산업에 새로운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의류 디자이너 생태계를 혁신한 RTR(Rent the Runway)

RTR은 2009년 하버드 MBA 졸업생 두 명이 창업해 만든 회사다. 창업자 중 한 명이 하버드 MBA 재학 시절 겪은 우연한 경험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사업이 시작되었다. 

젊은 여성들이 비싼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싶지만 사기가 쉽지 않고, 사더라도 자주 입을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럴 바에는 사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저렴하게 빌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RTR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하게 되었다.

RTR는 처음에는 디자이너의 옷을 정가의 10% 가격에 1회 렌탈해 주는 비즈니스로 출발했다. 젊은 디자이너들이 만든 신제품을 10% 가격에 렌탈해준다는 개념은 미국의 많은 직장 여성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벤처 캐피털 업계도 신선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잇달아 대규모 펀딩을 이어갔다.

회사 설립 직후인 2009년 7월 175만달러의 시드 라운드 펀딩을 시작으로 2010년 2월 1500만달러의 시리즈A 라운드 펀딩을, 이듬해 7월 시리즈B 라운드에서 1500만달러 펀딩을 받았다. 2013년 3월에는 시리즈C 라운드로 무려 4440만달러를 펀딩받았다.

2014년 RTR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했다. 2014년 7월 베타 서비스로 월 구독 방식의 언리미티드 서비스를 선보였다. 월 75달러를 내면 최대 3개의 액세서리를 렌탈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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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RTR 홈페이지에 게재된 ‘RTR 언리미티드’ 구독 서비스용 여성 의류들. 상단 맨 왼쪽 녹색 원피스는 소비자가가 1895달러에 달하지만, 구독 서비스를 할 경우 한달간 무료로 빌려 입을 수 있다.


새로운 모델 성공으로 대규모 펀딩이 추가로 잇따랐다. RTR는 2014년 12월 시리즈D 라운드와 2016년 12월 시리즈E 라운드로 각각 6000만달러씩을 추가로 펀딩 받았다. 이를 계기로 RTR는 본격적인 구독 서비스 중심 회사로 변신했다.

RTR는 2016년 3월 월 139달러를 내면 고급 디자이너 의류와 액세서리를 빌릴 수 있는 ‘RTR 언리미티드’ 구독 서비스를 정식으로 선보인데 이어 1년여 후인 2017년 10월에는 매월 4벌의 디자이너 의류를 빌릴 수 있는 ‘RTR 업데이트’라는 새 구독 서비스를 출시했다.

이후 구독 서비스는 수정을 거쳐 현재는 월 89달러의 ‘RTR 업데이트’와 월 159달러의 ‘RTR 언리미티드’로 정착했다. RTR 업데이트는 첫 달의 경우 69달러로 할인해 준다. 350여개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을 매월 4개씩 빌릴 수 있고, 이중 한벌의 옷을 교환할 수 있다. 제일 인기가 많은 RTR 언리미티드는 첫 두 달의 구독 비용을 80달러 할인해 주며, 500여개의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해 매월 4벌씩 무한대로 교환하며 빌릴 수 있다. 한꺼번에 최대 4벌의 의류를 빌릴 수 있지만 교환하고 싶은 옷을 무한대로 교환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패션 분야의 넷플릭스’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RTR는 2019년 3월 무려 1억 2500만달러의 펀딩을 받아 기업가치 10억달러인 유니콘 반열에 올라섰다. 사실상 패션사업의 파괴적 혁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업 이후 온라인 사업에만 주력해 온 RTR는 최근 들어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고객들이 손쉽게 디자이너 의류를 경험해보고, 손쉽게 반납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한 셈이다. 현재 오프라인 매장은 시카고, 뉴욕, 샌프란시스코, 토판가, 워싱턴DC 등 5개 도시에 있다.


AI 기반 패션 코디네이터로 각광받는 스티치 픽스(Stitch Fix)

스티치 픽스(Stitch Fix)는 고객 정보와 취향을 기반으로 20달러의 스타일 컨설팅 비용을 받고 5벌의 옷을 보내주면, 고객이 이중 마음에 드는 옷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회사다.

스티치 픽스가 보내준 5벌의 옷 중 한벌 이상을 구매하게 되면, 스타일 컨설팅 비용 20달러를 제외한 금액만 결제하면 그 옷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50달러 이상의 옷을 배송받았을 경우 마음에 들지 않는 옷은 무료로 반품할 수 있다. 만일 추천해 준 5벌의 옷을 모두 구매하면 25% 할인까지 해준다.

스티치 픽스는 처음에 워킹맘 등 옷 사러 갈 시간이 없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미국 여성 중 스티치 픽스를 이용해보지 않은 여성은 있어도 스티치 픽스를 한번만 이용한 여성은 드물다’고 할 정도로 재구매율이 높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유효 회원 수가 290만 명에 달하며, 재구매율도 무려 86%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티치 픽스는 2017년 11월 나스닥에 상장했으며, 2018년 매출액이 무려 1조원을 돌파했다. 현재 스티치 픽스의 기업가치는 4월 1일 현재 28억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온라인으로만 판매하는 의류 회사가 창업 6년 만에 무려 3조원에 달하는 기업 가치를 인정받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스티치 픽스는 일반적인 ‘온라인 의류 쇼핑몰’과 성격이 많이 다르다. 옷을 입은 모델의 사진은커녕 의류 제품 사진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그 대신 회원 가입 과정에서 몇 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신체 치수, 선호 패션 스타일, 라이프스타일 등에 관한 간단한 질문과 함께 소셜 쇼핑에 많이 이용되는 핀터레스트(Pinterest) 정보 이용 동의를 받는다.

스티치 픽스는 이를 통해 약 50종의 회원별 데이터를 수집한 후 회원 데이터를 기반으로 AI 알고리즘이 개인별 선호 의류를 추천하면 회사 소속 3000여명의 스타일리스트가 이 중 5가지 의류를 선정해 고객에게 배송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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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스티치픽스 홈페이지. 옷 상품 사진이나 모델 사진이 전혀 없다. 그림의 옷 사진은 상품이 아니라 이런 류의 옷이나 액세서리를 공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뿐이다. 하단의 여성, 남성, 아이들 메뉴를 클릭한 후 본인이 원하는 취향의 옷에 대해 간단하게 서술하면 AI와 패션 스타일리스트가 추천한 5벌의 옷을 배달해 준다.

데이터 기반 AI 알고리즘에 전문가의 감각을 절묘하게 결합한 스티치 픽스의 추천 기반 비즈니스 모델은 소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80% 이상의 고객이 추천받은 옷 중 최소 한 가지를 구매하고, 80% 이상의 고객이 첫 구매 후 90일 이내에 재구매에 나선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

스티치 픽스의 성공은 비즈니스 모델 관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패션 제품은 제품의 형태와 사이즈 등의 편차가 커 다양한 소비자의 특성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개인 취향 판단을 위한 고려 요인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사업을 위해 보유해야 하는 재고량이 엄청나다는 점도 패션 사업의 고질적인 어려움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온라인을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사업 모델을 구축하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소비자는 자신에게 맞는 제품을 찾기 위해 온·오프라인을 헤맬 때가 많다. 심지어 본인이 뭘 좋아하는지 분명하게 정의하지 못할 때도 많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자신의 성향과 취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제품이나 서비스가 제공되는 개인 맞춤형 비즈니스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온라인·소셜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공유되는 정보의 양이 늘면서 구매 의사결정이 더욱 힘들어짐에 따라 이런 개인 맞춤형 제품, 서비스가 저렴하게 제공된다면 기꺼이 해당 제품과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구매하려 할 것이다.

물론 스티치 픽스의 사업 모델이 완전히 검증됐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일단 나스닥 상장을 통해 1차 검증은 통과했다고 볼 수 있다. 스티치픽스와 같은 사업 모델이 제대로 시장에 안착된다면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개인 맞춤형 비즈니스 모델은 온라인 유통 영역뿐만 아니라 일반 상품과 관련 비즈니스에도 널리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인스타그램 댓글 평가로 수요예측하는 추지(Choosy)

2017년 하반기에 설립된 추지(Choosy)는 연예인 등 인플루언서들의 인스타그램 댓글을 분석해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옷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다. 창업자의 호기심이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해당 산업의 파괴적 혁신을 이끌어내고 있는 대표적인 회사다.

일반 패션 브랜드가 옷 한 벌을 디자인해서 매장에 진열하기까지 6개월에서 많게는 9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 하지만 대표적인 패션 유통회사인 자라나 H&M은 이 시간을 5주로 줄였다. 하지만 추지는 자라보다 더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옷을 만들어 고객의 집에 배송한다. 딱 2주만에. 이렇게 순식간에 옷을 만들면서도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팔릴만한 옷만 만든다.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 모델인 셈이다.

추지의 창업자인 제시 젱(Jessie zeng)은 MIT대학을 졸업하고 씨티은행에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그녀의 취미는 인스타그램에서 연예인이나 모델의 패션 아이템을 구경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제시 젱은 한 모델의 사진에 눈길이 갔고, 그 옷을 사고 싶어서 “Where can I buy that?(그 옷을 어디에서 살 수 있나요?)”라는 댓글을 달려고 했는데, 5만개 이상의 댓글 중 상당수가 이처럼 어디에서 구매할 수 있는지를 묻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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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추지 홈페이지에서 선주문을 받고 있는 패션 상품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끈 연예인들의 패션 아이템과 거의 흡사한 옷을 샘플로 만들어 자사 모델들이 입고 선주문을 받는 방식이다. 가격은 100달러 미만으로 책정해 구매 장벽을 없앴다.

제시 젱은 자기처럼 다른 미국 여성들도 연예인이 입고 있는 옷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는 것을 발견하고, “내가 저런 인기있는 옷을 직접 만들어 팔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제시 젱은 씨티은행을 그만 두고 친구들과 회사를 설립해 이런 방식의 사업을 위해 알고리즘을 만들기 시작했다.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면서 회사 설립 후 2017년 시드 라운드로 540만달러 펀딩을 받았다.

추지가 만든 알고리즘은 다음과 같이 작동한다.

먼저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연예인이나 모델 사진 중 패션 아이템에 대한 사진만 골라낸 뒤, 밑에 달린 댓글들을 분석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패션 사진 순으로 정리하는 식이다. 이렇게 알고리즘에 의해 정리된 사진 중 매주 5개의 패션 아이템을 선정해 추지 홈페이지(www.getchoosy.com)에서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두 번에 걸쳐 선주문을 받는다. 약 3일간의 선주문이 끝나면 해당 아이템은 더 이상 홈페이지에서 볼 수 없다. 일주일에 두번씩 총 10개의 신제품을 딱 3일간만 판매하는 것이다. 추지는 선주문이 완료되면 해당 패션 상품을 전세계의 제휴 공장을 통해 생산한 후 최대 2주내에 고객에게 배송한다.

추지의 성공 비결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고객의 잠재 수요를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확인하고 선주문을 통해 필요한 만큼만 빨리 제작해 판매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데 있다.

추지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확인한 고객의 숨어있는 수요를 공략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패션 산업의 고질적인 어려움이었던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소셜 미디어의 댓글을 통해 실시간으로 고객의 수요를 파악함으로써 유행 아이템을 선정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선주문을 통해 재고를 0으로 만듦으로써 재고 처리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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